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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미술

순수를 위하여 :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by 문슝1324 2020. 1. 21.

 

 

 

 

"나는 균형이 잡힌 무구(無垢)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지쳐버린 사람에게 조용한 휴식처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그림을"

 

 

 

 

 

Henri Matisse | Henri Emile BenoIt Matisse

 

 

1869~1954, 프랑스의 화가, 야수파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

 

 

줄리앙의 부그로의 문하생이었으며, 모로에게 배웠다.

동문인 마르케와 루오와 교우관계를 가졌다.

세잔, 고흐, 고갱의 데생을 구입하여 그들의 채색방법에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화풍을 발전시켰다.

인상파의 유산을 계승하여 우키요에(17~19C 일본 에도시대의 일상생활을 담은 풍속화)에 열중하기도 했다.

 

1896 ~ 1897년경부터 원색의 대비에 의하여 선명한 표현을 시도하였고,

앙데팡당 미술전의 출품을 통하여 젊은 드랭과 블라맹크와 깊이 사귀게 되어 색채는 더욱 선명해졌다.

 

그는 젊은 화가들의 선두에 서서 포비즘(fauvism, 야수파)의 기치를 올리게 되었다.

마티스에 의하면 포비즘의 운동은 무엇보다 먼저 표현수단의 순수함을 재발견하는 용기를 고취하고 추진하려는 것이었다.

그가 회화에서 '표현'을 강조했다.

표현은 화가가 주체적으로 화면에 만들어 내는 색과 모양의 배합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은 다름 아닌 긴밀한 질서를 가리키는 것이다.

 

1908년 이후 그는 이러한 의미에서의 질서 있는 조형을 탐구하였다.

화면은 모든 구성 요소의 균등한 비중에서 또 그 비중의 하모니에서 성립되고 있다.

다양하면서도 단일한 것, 질서·조화의 창조가 그의 과제였다.

 

그는 '동비중(同比重)·순일(純一)·절도(節度)'를 자기 스스로 표현의 3원칙이라 말했다.

마티스의 이러한 질서에 대한 감각은 자연법칙을 최상으로 하는 리얼리즘의 입장에서 본다면 길에서 벗어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본질적으로는 명석한 형식감정을 존중하는 라틴적인 조형정신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만년에는 색도 형체도 단순화 되었으며, 밝고 순수한 빛의 광휘와 청순 명쾌한 선에 의하여 훌륭하게 구성된 평면적인 화면은 '세기의 경이'라고까지 평가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시작하면서 1951년에 완성한 예배당의 장식은 세계 화단의 새로운 기념물이다.

 

 

 

 

출처 : 글로벌세계대백과(마티스-현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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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

 

 

<춤, Dance (1910)>

출처 : State Hermitage Museum, Saint Petersburg, Russia

 

 

 

<앵무새와 인어, The Parakeet and the Mermaid(1952)>

말년에 건강하지 않을 때, 개와 산책할 수 없어 산책할 수 있는 작은 정원을 만든 것이다.

정원처럼 느껴지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박물관 소장

출처 : www.moma.org

 

 

<호사, 평온과 즐거움(Luxe, Calme et Volupte)>

보들레르의 시에서 얻은 이 세 낱말은 마티스의 예술적 생애를 단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항상 색채를 호사하게 탕진하는 일에 대하여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고,

동시에 조용하게 다양한 통일을 추구하였다.

쾌락이란 그에 있어서 방종을 규제하는 질서 속에서 절도 있는 사치에 속한 것이었다.

 

 

 

<마티스 예배당, 로자리오 예배당(Chapelle du Rosaire)>

프랑스 남동부 연안에 있는 니스에서 북서쪽으로 약 20km에 위치한 고즈넉한 중세 분위기의 작은 마을에 있는 예배당이다. 70세때 아내와 헤어져 고독한 일상을 보내고 십이지장암 수술까지 받고는 1941년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이 20세기의 거장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을 남겼으니 바로 니스 근교의 작은 마을, 방스에 있는 로사리오 예배당이다

 

1941년 72세의 연로한 나이로 프랑스 리옹에서 십이지장 암 수술을 받았던 마티스는 병원에서 젊은 간호사 모니크 부르주아를 만나게 되었다. 1943년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치닫게 될 무렵 시미에즈의 공습이 있고 난 직후 마티스는 산기슭에 자리한 중세도시 방스로 작업실을 이전하게 되는데 그 곳에서 운명처럼 모니크와 재회를 하게 되었다. 1946년 당시 모니크 부르주아는 자크마리라 불리우는 수녀가 되어 방스에 있는 도미니쿠스 수도회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마리 수녀의 추천으로 마티스는 예배당의 스테인글라스 작업을 의뢰 받게 된다. 하지만 마티스는 그녀를 위해 사비까지 털어 인테리어, 디자인, 미사 제기와 제복까지 시공에서부터 완공까지 건축의 모든 부분에 관여한다. 병마와 싸우던 육체적으로 나약했던 한 인간은 혼심의 힘을 다해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경건한 공간을 탄생시킨다.

 

앙리 마티스의 작품답게 군더더기가 하나 없이 간결하며 오직 예배 공간의 본질에만 충실한 경건함이 가득담겨져 있다. 성당 입구와 예배당 안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와 <십자가의 길>로 수난 받는 예수의 모습이 흰 타일 위에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을 보는 것 처럼 순수하다. 예수의 머리 위엔 그 흔한 후광 하나 없으며, 주변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있는 천사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저 노대가의 절대경지에 이른 간결한 선만이 존재할 뿐이다.

 

 

 

 

 

 

 

 

 

 

 

 

 

 

 

 

"어린 아이가 사물에 다가갈 때 느끼는

신선함과 순진함을 보존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평생 어린 아이로 남아 있으면서도

 

세상의 사물로부터 에너지를 길러오는

성인이 되어야 한다."

 

 

 

 

 

 

 

 

출처 : 남프랑스 관광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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