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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

순수를 위한 공간 : 피아노의 숲

by 문슝1324 2011. 10. 11.

나는 눈물이 많다. 슬퍼도, 감동해도, 심지어 웃겨도 -_-; 
웃길 때 눈물이 흐르면 초난감 해지지만, 때론 눈물이 나는게 뭔가 자랑스러울 때도 있다. 

싸웠던 친구들이 화합하는 모습, 한 사람의 내면이 성숙하는 모습, 많은 사람들이 보잘것 없다고 치부한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깨닫고 희망차게 사는 모습, 여러 사람이 끈끈한 공동체로서 하나되는 모습 등등을 볼 때면, 여지없이 눈물이 난다. 이때 나오는 눈물은 그렇게 벅찰 수 없다.

몇 년 전, 춘천의 한 만화책방에서 만화책을 보다가 남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눈물콧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그 만화책은 "피아노의 숲"이었는데, 내가 따뜻해지는 요소들이 한가득 담겨있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엄마 때문에 사창가에 사는 이찌노세 카이는 근처 숲에 버려진 피아노를 치며 노는게 유일한 낙인 소년이다. 어느 날,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슈헤이가 전학오고, 슈헤이는 카이의 천재성을 알아보게 된다. 교통사고로 피아노와 멀어진 천재 피아니스트 아지노도 카이의 능력을 알아보고,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가르친다. 이러한 과정에서 카이는 피아노에 재미를 느끼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현한다.

뭐 이게 간단한 줄거리인데, 이 만화나 영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은 슈헤이와 카이의 우정, 피아노 천재의 도약 등에서 감동을 얻었다고 한다. 근데 내가 피아노 숲에서 받은 감동은 느닷없게도 피아노 콩쿨 때문이다.

기초없이 제 멋대로(물론 그도 훌륭했지만) 피아노를 쳐왔던 카이는 콩쿨 지정곡인 모차르트 곡을 연주해야 했다. 모차르트 음악을 듣고 그 음악에 반한 카이는 자신이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면 모차르트를 욕되게 하는 일이라 생각하게 된다. 이 때부터 카이의 두려움은 시작된다.

이렇듯 기초가 없는 사람이 짧은 시간에 온전함을 갖춰야 하는 상황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뛰어넘는건 거의 불가능하다. 마치 연극을 한달 앞두고 대본을 하나도 못 외운 연극배우가 겪는 두려움과 불안감처럼 카이도 공포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오죽하면 피아노 앞에 다양한 형상을 한 모차르트들이 피아노에 앉지도 못하게 겁을 주는 상상을 했을까. 근데 역설적으로 이런 장면들은 내가 피아노의 숲에 더 빠지게 만들었다.

그 어린나이에 대충 음표 외우고 연습해서 쳐도, 기초가 워낙 없으니까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카이는 다른 사람의 이목 보다는 그 원작자인 모차르트(혹은 자기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 만이 카이의 자신감을 결정한다. 이 점이 특별하다. 

많은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강박적으로 반응한다. 물론 더불어 사는 사회니까 당연할 수 있는 얘기지만, 그것이 권력이 될 땐 불행한 인생이 시작 된다. 그런데 카이는 기특하게도 타인이 주는 명예가 아니라 모차르트, 즉 자기 자신의 성장을 피아노의 목적으로 삼는다. 이런 점에서 특별하다는 것이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상상속 모차르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즉 스스로가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피아노를 부단히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엄청난 연습을 한 카이는 마침내 콩쿨 당일,  상상속의 모차르트들과 조화를 이루며 피아노를 연주하게 된다. 아 정말 이 때는 너무 벅차서 눈물콧물이 콸콸 쏟아졌다.

비록 모차르트가 그린 악보대로 표현하지 않아 콩쿨에서는 떨어졌지만, 모차르트와의 교감을 연주한 카이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그리고 카이는 약속한다. 많은 곡들과 교감하는 피아노를 연주하기로-

이 만화책을 보면서, 나 또한 다짐했다. 남이 규정한 틀 속 경제지리를 생산하는 일이 아닌, 그 동안 축적된 경제지리학을 다시 해석하기로. 어느 공간에, 어떤 사람에, 나와 너의 삶에 한 궤적이라도 남길 수 있는 공부를 하는 것이 내 인생과 학문적인 경제지리 또한 풍부해지는게 아닐까 하는 희망으로.

두려움을 넘고, 자신을 독려하는 카이에게 한 수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