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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

탕웨이가 자꾸 우리나라에 오는건 아마도... : 영화 <만추, 2010>

by 문슝1324 2013. 2. 24.

 

현빈과 탕웨이의 진한 키스신이 유명하다는 <만추>,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싶어서 안보던걸 오늘은 눈에 띄길래 봤다가 이걸 왜 이제야 봤지 싶었던 영화<만추>.

 

<하녀>처럼 옛날 영화들 중 괜찮은거 리메이크하는 트렌드이니 <만추>도 그런 흐름에 편승하는 것 일테고, 나는 <하녀>에 별다른 감응이 없었기 때문에, 대표 훈남인 현빈이 나왔더라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근데~! 우연찮은 이끌림으로 보게된 <만추>는 기대 이상이었다. 김태용 감독이 이 영화에서 담은 시애틀은 기존의 영화를 따라하는 수준이 아니였고, 두 배우의 비주얼보다도 훨씬훨씬 알싸하게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 년 중 대부분이 안개가 끼는 시애틀에서 드물게도 유독 맑은 날 애나(탕웨이)와 훈(현빈)은 만난다. 남자가 예쁜 여자에게 다짜고짜 돈 빌려달라고 껄떡대는 1966년 수법으로 애나와 훈의 인연은 시작된다. 살인자로 수감중인 애나, 유부녀들의 비밀애인으로 헐렝이처럼 살아가는 훈. 현재라는 공간이 불온하고 안개낀 시애틀처럼 미래가 안보이는 사람들이다.

 

인연이 안 이어질 드읏~~~ 하면서도 이 둘은 데이트도 잘 하고, 어느 순간 부터는 각자의 비루한 처지, 가슴 속 깊이 지니고 있는 상처를 서로에게 고해성사하기까지 마음을 열게 된다. 그렇지만, 아직 수감기간이 남은 애나가 감옥으로 가는 길에 훈이 동행해주다가 그 유명한 길고긴 키스를 하고 몇 분 동안 이것저것 보여주다가 영화는 끝이 난다. 김태용 감독이 시애틀의 매력을 어떻게 담았는지를 감응한 장면은 영화 곳곳에 너무도 많이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이 얘기는 너무 방대해서 패쓰!

 

시애틀 영상도 아주 좋았지만, 내가 아주아주 감동받은 장면은 놀이동산 씬이다. 어린이대공원 같이 오래된 놀이동산에서 애나와 훈은 범퍼카를 탄다. 그리고 범퍼카 타는 곳 밖에서 어떤 연인이 대화를 하는 걸 같이 지켜본다. 실제로 그들이 무슨말을 했는지는 멀어서 모르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매달리는 분위기였고, 훈은 자기맘대로 그들의 대화를 추측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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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 도대체 어떻게 날 찾았지? 돌아가
여 : 당신을 찾아 그리스에서 날아왔어요
남 : 지겨운 여자군.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마.
여 : 항상 이렇게 당신을 봐왔어요. 함께 돌아가요.
남 : 아니, 난 이제 새 삶을 시작했어. 도대체 왜 나를 찾아온거지?
여 : 몰라요. 내 마음은 항상 여기에 있었어요.
남 : 마음? 웃기는군. 자신을 속이지 말라구. 그건 사랑이 아니야. 추억이고 집착일 뿐이지.

 

<아래부터는 애나(탕웨이)와 번갈아가며..>


여 : 제발. 난 그런 눈으로 보지말아요. 왜 그렇게 변한 건가요?
남 : 난 항상 이렇게 당신을 봐왔어.
여 :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늘 따뜻하게 날 바라봤어요.
남 : 기억나지 않아.
여 : 기억해봐요
남 : 기억하는 건 당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사실 뿐
여 : 당신의 용서를 원하는게 아니에요. 난 당신의 사랑을 원해요.
남 : 뻔뻔한 여자군.
여 : 그래요. 난 뻔뻔해요. 하지만... 날 이렇게 만든건 당신이에요. 당신이 말했지요. 돌아오라고.
남 : 난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
여 : 아니 했어요. 당신의 눈빛이, 당신의 손길이.. 내게 돌아오라고 했어요. 꼭 말로 해야하는건 아니에요.
남 : 가봐야겠어. 이제 당신의 행복은 당신에게 달린거요.
여 : 어쩜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어요. 흑흑훅흙훅흑흑흑흑

(여자, 뒤돌아 떠난다)

 

 

남 : 잠깐!

 

 

 

 

 

 

처음에는 훈(현빈) 혼자 원맨쑈를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애나도 그 원맨쑈에 동참한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이 장면에서 애나가 말하는 대사들은 훈과의 사이를 투영하여 말하는거라고 하지만, 나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애나가 했던 원맨쑈 같은 대사들은 애나의 옛 연인을 염두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애나가 지어낸 대사 중에는 차갑게 눈빛이 변한 남자에게 서운함을 드러내는게 있는데, 훈은 애나에게 시종일관 따뜻한 눈빛 주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과거에 애나의 옛연인이 결혼한 애나를 찾아와 함께 떠나자고 했을 때, 저 대화를 나눴는지도 모른다.

 

그 연인의 대화는 끝나고 그 여자는 남자를 뒤돌아간다. 그리고 그 남자는 그 여자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애나(탕웨이)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그리고는 애나의 판타지가 시작된다. 난 이 장면이 <만추>의 최고장면이라고 생각한다!! 7분 남짓의 시간동안 범퍼카 안에서 밖은 순식간에 연극무대가 되고, 연인들의 대화를 추측하는 과정에서 애나의 지난사랑의 상처가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그 여운을 이어서 애나가 꿈꾸었던 사랑의 판타지가 연인들의 춤으로 승화된다.

 

매달리는 여자를 내치는 남자, 그럼에도 뒤돌아 떠나려는 여자를 뒤쫒는 남자,

애나는 그들의 행보를 보면서 자신과 옛사랑인 남자와의 관계를 투영한다.

어쩌면 자신의 이별도 저들처럼 일정한 보폭을 둘 수밖에 없지만,

마음 속으로는 서로가 마주보며 춤추고 있노라는-

 

왜 이걸 이제야 봤지라고 생각한건 순전히 이 장면 때문이다. 순수한 애나의 사랑이 순수하기에 아름답고, 이 순수함이 이 영화에 투영되어 있기에 이 영화가 소중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애나의 치기어린 순수함을 보며, 나는 아마도 '아유~ 애나야~~ 결국 마음에 없으니까 헤어지자고 하는거지!! 아유 쪼다~'라고 훈계했을거다.

 

근데 현실에서도 의외로, 상대의 위치가 내 곁인지 아닌지라는 조건만으로, 그 인연이 사랑이 아니였다는 점을 인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고, 그렇기에 이 영화에 마음을 주게 된다. 

 

나아가 이 장면을 곱씹어보면, 김태용 감독과 탕웨이의 스캔들이 이해가 간다. 탕웨이가 분당인가 어디에 땅을 산 이유는 저 장면들 대사처럼 '김태용 감독을 찾아 홍콩에서 날라왔어요'가 되는거고, 김태용 감독은 오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눈빛과 손길, 저 영화 속 장면으로 자꾸 탕웨이를 끌어당기고 있는건 아닐까?

 

이 영화의 내용이 현실로도 이어지는 것 같아 김태용 감독의 <만추>가 더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