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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

다큐멘터리 타이타닉

by 문슝1324 2019. 12. 21.

 

 

2016.10.25

e-channel 익스트림 미스터리

미스터리 다큐, 타이타닉의 최후

 

 

■ 문제의식

절대로 가라앉지 않는다는 배가 2시간 반만에 침몰

정말 빙산이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켰던 것인가?

항구를 떠나기 전부터 중대한 결함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타이타닉 선장이 중대한 실수를 한 것일까?

주변 독일 잠수함과 관련 있는 것일까?

 

■ 타이타닉 사건

(증언자 : 조선기사 겸 역사가 윌리엄 가즈케, 타이타닉 최후의 진실 저자 제임스 클레어리, 해양역사가 데이빗 로버츠)

 

당시 가장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이 처녀항해에 동참함.

1907년~1911년(4년)에 걸쳐 당시 가장 좋은 강철로 제작

1912년 4월 14일, 사우샘프턴 항에서 목적지인 보스턴으로 출항

춥고 맑은 날씨, 잔잔한 바다 위를 2시간 반정도 항해하다가 침몰

1500명이 사망, 다음날 새벽 카르파티아 호가 700명 구조

 

1985년 타이타닉의 앞쪽 잔해 발견

빙산의 영향을 발견하지 못함.

 

1991년 바다 밑바닥 잔해 속에서 타이타닉 강철 발견

야금학적 분석 결과, 강철에서 많은 유황이 발견

1993년 깨지기 쉬운 강철이라고 판명하고 빙산이 배에 90m에 달하는 구멍을 냈을 거라고 추측함.

 

그러나 선체 오른쪽에 6개의 작은 구멍만이 나 있었다.

어떻게 3.6m2의 작은 구멍이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배를 침몰시킬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빨리 가라앉을 수 있었을까?

 

1983년 예술가겸 역사가로서 타이타닉 조사팀에 참가한 제임스 클레어리가

타이타닉의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조사를 실시함.

열려지지 않았던 놀라운 사실이 드러남.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빙산과 충돌 후 15분가량 항해를 계속 했다.

15분동안 전진했기 때문에 선체 앞쪽 구멍으로 바닷물이 빨리 진입할 수 있었고, 이것이 훨씬 더 빨리 가라앉게 했다.

그러나 화이트스타 라인에서 가장 유능한 선장이었다.

선장의 결정은 배의 심각성을 몰랐고, 위기관리 메뉴얼대로 수행한 것일 뿐이었기에 치명적인 결정을 내렸다.

안타깝게도 만약 15분을 전진하지 않았다면 몇시간은 더 떠있었을 것이다. 다른 배가 구해줄만한 충분한 시간을 놓친 것이다.

 

또한 타이타닉은 막대한 양의 석탄 연료를 사용했다.

석탄연료의 문제점은 자연발화가 잘된다는 것이다.

이에 타이타닉은 출발하기 전부터 배 우측의 6번 보일러실에서 큰 화재가 났었다.

선원들은 불을 끄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한다.

타이타닉의 가장 큰 손상을 입었던 부분은 배 우측 5, 6번 보일러실 중간이었다.

화재로 방수 칸막이가 훼손되어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배수를 시작하고 얼마 후 5번 보일러실에서 최초 희생자들이 발생했다. 화부와 기관부원 몇 명이 펌프질을 하다가 6번 보일러실의 석탄 저장고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익사한 것이다. 이건 밑에도 있는 항해 중에 있었던 의문의 화재 때문에 격벽이 약해져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 최신 과학기술로 만든 타이타닉호의 침몰 참사는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문명의 진보와 인간의 이성에 낙관적인 신뢰를 갖고 있던 당시의 서방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선박·항해의 안전성 확보에 대해서, 조약의 형태로 국제적으로 결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 1914년 1월 "해상에서 인명의 안전을 위한 국제 회의"를 열어 13개국이 참가, 해상에서 인명의 안전을 위한 국제 조약(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Safety of Life at Sea(SOLAS), 1914)이 채택되었다. 또한 영국 상무성은 구명보트 구비 기준을 배의 총 정원으로 변경하였다. 그 후로, 여러 배가 조약에 따라 구명보트를 늘렸다. 미국에서는 선박에의 무선 장치 배치의 의무 부여가 강화되어 무선통신 기계가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 정치적 관계

(증언자 : 타이타닉 역사가 댄 체리, 미국 해군사관학교 전직 역사가 칼 데이비스)

'RMS 타이타닉'은 단순한 배의 이름이 아니다.

조난 시 독점적인 구조활동을 펼칠 권리를 갖고 있는 회사명이다.

그들은 타이타닉 화물칸의 다이아몬드를 되찾을 권리도 갖고 있다.

 

타이타닉의 침몰 원인을 찾기 위해 상원에서 청문회가 열렸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빙산과 부딪친게 아니라 스쳐 지나갔다고 한다.

빙산과 마찰이 있은 후 배 내부에서 폭발음이 들렸다고 증언했다.

 

이것이 독일 잠수함(U보트)이 어뢰를 발사했다는 음모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세계1차대전 이전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이타닉 침몰 3년 후인 1915년에 U보트가 어뢰로 영국의 '루시타니아 호'를 격침했기 때문이다.

18분만에 가라앉았고, 1200명의 사람들이 희생됐다.

 

어쨌든 근처에 있던 캘리포니안 로드 선장은 타이타닉의 침몰 전, 얼음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감지기의 태엽이 풀려있어서 타이타닉에서 보낸 조난 신호를 받지 못했다.

캘리포니안 무선사는 다음날 아침에 타이타닉 침몰소식을 들었다.

로드 선장의 업무태만이 언론을 통해 알려져 퇴사조치 되었다.

 

 

 

자료 : https://www.youtube.com/watch?v=0duxHVS614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