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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영화

너네 어떻게 살거니 : 이창동 감독 <버닝>

by 문슝1324 2018. 6. 9.

 

 

이창동 감독은 청춘들의 미스터리한 모순적 삶, 인생을 포착한다.

이창동 감독은 “지금 젊은이들은 자기 부모 세대보다 더 못살고 힘든 최초의 세대다. 지금까지 세상은 계속 발전해왔지만 더 이상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 없다. 요즘 세대가 품고 있는 무력감과 분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버닝>의 시작을 전했다. 그리고 감독은 "지금 우리는 벤의 세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창동 감독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용서, 평등한 사랑인 듯하다.

나와 지금의 청춘들이 사랑하는 대상은 무엇인가.

사랑을 알고는 있는 것인가. 그냥 가질 수 없는 것을 열망하는 심리만을 지닌게 아닐까.

 

지금은 보편적으로 이것이 문제다라고 생각할만한 대상이 없어진 것 같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각각 문제를 안고 있다.

영화에는 벤과 종수가 나오지만 두 인물이 각각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고 있다.

벤은 윤택하게 좋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관용적이고 남들을 배려하는 것 같다.

별 문제가 없어보인다. 대개 종수같은 친구가 선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다.

 

 

종수는 작가 지망생으로서 처음 소설을 쓰면서 ‘내가 이 세상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작가의 원초적 질문이다.

<버닝>에 이르기까지 그 질문을 나도 다시 시작하게 됐다. 그런 질문에 놓이면 사실 편할 수도 있다.

고민할 게 뭐가 있겠나. 재미있고, 관객이 좋아하고, 나름의 메시지로 작품성도 갖춘 그런 작품을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더라.

매번 ‘이걸 꼭 내가 해야 하나?’ 싶은 본질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가면서 일종의 병적인 자의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게 내 한계이자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2018. 6. 4 이창동 감독 인터뷰(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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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과 파주

 

남산이 가깝게 보이는 언덕촌들.

그 공정한 햇빛도 잠시만 머무는 곳,

그곳에서 해미는 마임을 하듯 미지의 세계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들의 욕망이 속물처럼 드러난다.

 

 

 

종수(유아인)는 작가 지망생이다.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어디에 종속되지 않는 택배로 생계를 유지한다.

자유의지가 중요한 사람이다.

 

 

종수는 왜 벤을 허름한 트럭이 아니라 페라리에서 죽였을까.

 

자신의 트럭에서 죽이고, 트럭을 불태우고, 페라리를 타고다닐 수도 있었다.

종수의 비닐하우스는 페라리였던 것일까.

 

 

고양이는 보일이. 보일아. 보일라.

종수는 해미의 방에서 고양이를 애타게 찾아도 흔적만을 쫒게된다.

해미에게 안 보였던 고양이를 벤의 집에서 결국 찾게 된다.

벤은 고양이와 함께 살기를 택했다.

생명, 동물, 개가 아닌 고양이...

의미를 궁구하지 않더라도 주어진 하루를 누리는 고양이.

 

종수가 소를 판다.

종수에게 소는 재산 이상이다. 말동무, 친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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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전종서)는 자신의 상상 속 우물 안에서 그레이트한 의미를 찾는다.

아프리카에 가서 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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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은 종수(유아인)에 더 호감을 보인다.

벤은 그냥 놀아도 부자이다. 근데 무료하다.

 

재미가 필요한데, 생존을 위한 재미를 추구한다.

해미의 허상들을 흥미롭게 지켜보지만, 무시하는 태도는 아니다.

 

비닐하우스를 태운다고 한다.

비닐하우스처럼 불안한 사람들을 애태운다는 것 아닐까.

 

벤의 새로운 여자친구는 같은 경제계급 자녀가 아니다.

아시아 국가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 장수이다.

벤은 그런 이야기를 지닌 여자들을 어여삐 여긴다.

근데 사랑은 아니다.

 

벤은 왜 죽을 때 원망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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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수의 아빠, 엄마

 

종수의 아빠는 분노장애가 있지만 사람에게 직접 살해하지는 않는다.

반면 종수는 자신이 욕망하는 벤을 계획적으로 죽인다.

 

아빠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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